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비 찰튼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축구 선수로서 갖춰야 할 웬만한 능력을 전부 최고 수준으로 가지고 있었고, 스트라이커부터 중앙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커리어는 공격수로 시작하여 오랜시간 왼쪽 윙어로 뛰었으나 이후 다재다능함을 살려 활약하기 위해 포지션을 좀 더 밑으로 내렸고, 그 결과 은퇴 때까지 맨유와 국가대표팀에서 전천후 미드필더로 활약하게 되었다. 롱 패스 능력이 아주 뛰어났으며, 공간을 보는 시야가 넓고 상황판단이 빨라 기회창출에 능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70wcBCharltonrun.gif|width=100%]]}}} || || {{{#e31e31 '''1970년 월드컵 서독전에서 보여준 수비가담'''}}} || 찰튼은 단순한 플레이메이커가 아니었다. 언제나 팀에서 가장 많이 뛰고, 수비력 역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일례로 196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라이트윙 [[가린샤]]를 수비하는 데에 레이 윌슨이 버거움을 느끼자, 찰튼이 일시적으로 왼쪽 수비수처럼 뛰고 윌슨이 잠시 중앙으로 들어갔다. 해당 경기에서 왼쪽 라인에서 쉴새없이 오르내리며 자우마 산투스와 가린샤를 마크하고 뚫어내기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선수들이 해이해져 있더라도 자신만큼은 절대 고삐를 풀지 않았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계속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마찬가지로 1962년 월드컵 브라질전에서, 후방을 확인하지 않고 드리블하던 브라질의 지지에게 달라붙어 곧장 볼 소유권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중원 장악력은 당대 최고였다. 팀을 위한 헌신적 자세 덕에 '그라운드의 노동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찰튼이 어린 시절 [[알프레도 디스테파노]]의 플레이를 보고 '''골키퍼에게서 볼을 받고, 풀백에게 지시를 내리고, 경기장의 모든 곳을 지켜보며 영향력을 미쳤다'''라는 감상평을 남긴 바 있는데, 사실 찰튼 본인도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선수였다.[* 지금은 전술의 발전으로 인해 공격수에게도 수비가담이 요구되며 텐백상황에서의 역습형 공격수가 아닌 이상 수비를 하지 않으면 욕을 먹는데 저때 당시도 전술의 발전이 있긴했으나 웬만한 감독 아니면 공격수에게 수비가담 요구를 하지않았다. 오히려 저때 수비가담을 시키거나 하는 감독이나 공격수가 보기 힘든 시대였다.] 찰튼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도 기용되곤 했는데,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기용되더라도 한결같이 엄청난 수준의 수비 가담을 보여주었다. 찰튼의 경우에는 매우 다재다능했기에 이런 말로 한정짓기에도 무리가 있지만, [[제로톱]]의 명맥을 이은 선수 중 하나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찰튼이 가진 또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는 양발 사용 능력이었다. 찰튼은 펠레와 함께 당대 최고의 양발잡이로 유명했으며, 양발을 가리지 않고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을 구사했다. 세트피스도 상황에 맞게 왼발과 오른발을 선택하여 찼다. 양발 사용 능력이 뛰어나니 드리블 능력 역시 당연히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찰튼은 자유자재로 스피드를 조절할 줄 아는 선수였고, 공을 가지고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면서 스피드를 살려 치고 나가는 플레이에 능했다. 드리블로 만들어낸 공간에서는 대부분 크로스를 올리거나 패스를 했다. 또한 찰튼은 좋은 경기 매너와 훌륭한 스포츠맨십으로도 유명했다. 정말 열심히 뛰면서도 파울이 드문 선수였다. 그래서 현역 시절 당시, 신사적인 축구 선수의 대명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